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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생존 프로토콜

무인도 생존 프로토콜 3화 출발 (2)

by yyu009 2025. 6. 12.

<태풍에 갇힌 백두호>

박만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빗방울은 처음엔 가늘었다가, 곧 굵어지기 시작했다. 브리지 전방을 응시한 강 선장은 기관장과는 다르게 회전 키를 조종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엷은 미소까지 머금었다. 오전 7, 백두호는 예정된 낚시 포인트에 도착했다. 수심 100m, 서해의 깊은 바다였다. 하지만 날씨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모두 구명조끼 착용하시고, 안전사고 주의하세요!"

강도식 선장의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승객들은 저마다 낚시 준비를 시작했다. 이도현도 가져온 5.4m 낚싯대를 조립하며 채비를 점검했다. 일출 낚시 동호회를 촬영하는 인터넷 방송팀 중 한 명이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지금 서해 바다 한가운데 있습니다. 날씨가 조금 흐리긴 하지만, 오늘 대물을 노려보겠습니다!"

70대 노인은 이미 능숙하게 채비를 내리고 있었다. 40년 넘게 바다낚시를 해온 베테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젊은이, 이런 날씨에는 민어가 잘 잡혀. 바람이 불고 물이 탁해지면 고기들이 더 적극적으로 먹이활동을 하거든."

이도현은 노인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 불안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 830, 첫 번째 입질이 왔다. 대기업 사원 중 한 명의 낚싯대가 크게 휘어졌다.

"! 잡혔다!"

갑판이 순식간에 활기를 띠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쪽으로 관심을 집중했다. 10분간의 실랑이 끝에 올라온 것은 30센티미터 정도의 민어였다.

"오오...! 좋네요...!"

"첫 고기가 민어라니...!"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불안했던 날씨도 잠시 잊혀졌다. 이어서 곳곳에서 입질이 이어졌다. 이도현에게도 30분 후 첫 입질이 왔다. 낚싯대 끝이 톡톡 떨리더니 확실한 손맛이 전해졌다.

"와...!! 제대로 걸렸네...!"

조심스럽게 릴을 감으며 천천히 끌어올렸다. 올라온 것은 25센티미터 정도의 민어였다. 크지는 않았지만 첫 고기라 기분이 좋았다.

"축하드립니다!"

70대 노인이 웃으며 축하해주었다.

"고맙습니다. 아직 초보라서 이 정도만 해도 만족입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깐, 날씨는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점점 강해지고, 파도도 높아졌다. 처음엔 1미터 정도였던 파도가 어느새 2미터를 넘어서고 있었다.

"거 참, 이상하네... 일기예보에서는 이런 얘기가 없었는데..."

상기된 표정인 박만수 기관장이 조타실에서 라디오를 확인했다. 기상청 해상특보가 나오고 있었다.

"...서해상에 급격한 기상변화가 예상됩니다. 모든 선박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강도식 선장도 표정이 굳어졌다. 30년 바다 경험으로도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는 흔하지 않았다.

"승객 여러분, 잠시 낚시를 중단하고 안전장비를 점검해주세요."

선장의 방송이 나가자 승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벌써 끝나는 거야?"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불만의 목소리들이 나왔지만, 안전이 우선이었다. 정오가 지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파도는 3미터를 넘어섰고, 바람은 거의 폭풍 수준이었다. 백두호는 거대한 파도에 떠밀려 심하게 요동쳤다.

"으악... 멀미가..."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사방을 두리번거린 승객들은 하나둘 선실로 피하기 시작했다. 갑판에 서 있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도현은 난간을 붙잡고 바다를 바라봤다. 아침과는 완전히 다른 바다였다. 평화롭던 푸른 바다가 이제는 분노한 괴물처럼 변해있었다.

"선장님! 귀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터넷 방송팀이 조타실로 올라가 물었다.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강도식 선장은 침착하게 대답했지만, 표정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이런 급작스러운 기상변화는 예측하기 어려웠고, 더욱이 이미 바다 한가운데 나와있는 상황에서는 대응이 쉽지 않았다. 오후 1, 드디어 귀항을 결정한 강도식 선장은 안내 방송 마이크를 잡았다.

"모든 승객 분들은 선실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항구로 귀항합니다...!!"

급히 닻을 올린 박만수 기관장이 엔진을 최대 출력으로 돌렸다. 하지만 거센 파도와 바람 때문에 백두호의 속력은 평소의 절반도 나오지 않았다.

"X... 이런 날씨에 왜 나왔담..."

박만수가 욕을 중얼거렸다. 20년 넘게 바다에서 일해온 그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이도현은 선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봤다. 파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게 정말 위험한 상황인 건가...?'

불안감이 커져갔다. 평범한 바다낚시 나들이가 이렇게 위험한 상황으로 변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후 2,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무선통신이 두절된 것이었다. 조타실을 들여다보던 몇몇 승객과 함깨 있던 이도현은 눈을 껌벅이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여보세요? 인천해경입니다. 백두호 응답하세요...! 치익...! 칙...!!"

라디오에서는 잡음만 들려왔다. 폭풍 때문에 전파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젠장... 통신이 먹통이야...!"

강도식 선장이 무선기를 두드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었다. 승객들도 핸드폰을 확인해봤으나 전파가 잡히지 않았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배는 외부와 단절된 것이었다.

"선장님, 정말 괜찮은 건가요...?"

70대 노인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곧 항구에 도착할 겁니다."

하지만 강도식 선장의 목소리에도 확신이 없었다. 현재 바다 상황으로는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오후 3,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파도는 4미터를 넘어섰고, 백두호는 거대한 파도에 떠밀려 이리저리 기우뚱거리며 장난감처럼 흔들렸다.

"으, 으악...!"

한 승객이 비명을 질렀다. 거대한 파도가 갑판을 덮치며 바닷물이 선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폭포수를 얻어맞은 배는 바닷물을 머금은 채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모두 구명조끼 착용하세요!"

강도식 선장의 긴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이제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승객 한 명이 쓸려나갈뻔한 모습은 모두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이도현은 떨리는 손으로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마음속에서는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보... ... 미안해...'

아침에 아내가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했던 평범한 인사가 이제는 마지막 말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백두호는 계속해서 거센 파도와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27톤짜리 낡은 배로는 자연의 분노를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다. 바다는 더 이상 평화로운 낚시터가 아니었다. 사느냐 죽느냐의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50여 명을 태운 백두호는 폭풍우 속에서 필사적으로 태풍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시련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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