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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생존 프로토콜

무인도 생존 프로토콜 4화 폭풍의 시작(1)

by yyu009 2025. 6. 12.

<태풍에 난파된 백두호>

 

오후 330, 서해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아침에 보았던 평온한 푸른 바다는 간데없고, 이제는 분노한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파도는 5미터를 넘나들며 백두호를 장난감처럼 흔들어댔다. 이도현은 선실 창가에 몸을 맡긴 채 밖을 내다봤다. 창문에 부딪히는 바닷물 때문에 시야가 흐릿했지만, 그래도 바다의 무서운 위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파도가 마치 산처럼 솟아올랐다가 백두호를 향해 무너져 내렸다.

"으으... 토할 것 같아..."

인터넷 방송팀 중 한 명이 비닐봉지를 붙잡고 신음했다. 심한 멀미에 시달리고 있었다. 처음엔 용감하게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려 했지만, 이제는 그럴 여유도 없었다.

"진정하세요. 곧 괜찮아질 겁니다."

70대 노인이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그의 얼굴도 창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40년 바다 경험에도 이런 급작스러운 폭풍은 처음이었다. 어떤 사람은 서로 붙잡고 앉아 있었다. 평소 자신만만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겁에 질린 표정뿐이었다.

"이거... 정말 위험한 거 맞죠?"

모녀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스무 살 아들은 어머니를 꼭 껴안으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이도현은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그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풀려고 떠난 평범한 낚시 여행이 이렇게 위험한 상황으로 변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너무 위험해...'

조타실에서 강도식 선장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30년 바다 경험으로도 이런 급작스러운 기상변화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기상청 예보에서는 폭풍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기, 기관장...! 엔진 상태는 어때...?"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박만수 목소리에는 불안이 섞여 있었다. 백두호는 20년 넘은 낡은 배였다. 평상시에도 가끔 고장이 났는데, 지금의 극한 상황에서는 언제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강도식은 해도를 다시 확인했다.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까지는 3시간 정도 걸렸다. 하지만 이런 바다 상황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었다.

"선장님, 무선 통신은 여전히 안 됩니까?"

"아직 잡음만 들려요. 폭풍 날씨에서는 으례 전파가 전달되지 않아요..."

무선기에서는 여전히 치지직거리는 잡음만 들려왔다.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두절된 상황이었다. 해경이나 다른 선박들도 폭풍 속에서는 구조작업을 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젠장... 이런 때 왜..."

강도식은 속으로 후회했다. 아침에 날씨가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출항을 포기했어야 했는데, 승객들을 실망시키기 싫어서 강행한 것이 실수였다.

오후 4,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백두호의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덜덜덜... 끼익..."

"선장님! 엔진이 이상해요...!"

박만수가 급히 조타실로 올라왔다. 그의 얼굴은 기름때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뭐가 또 문제야?"

"냉각수 계통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아마도 큰 파도 때문에 바닷물이 들어간 것 같아요."

치명적인 문제였다. 엔진이 과열되면 완전히 멈출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백두호는 완전히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게 될 것이었다. 짐작한 선장이 물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어?"

"지금 상태로는... 한 시간 정도? 그것도 운이 좋으면요."

강도식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 시간으로는 항구에 도착하기 어려웠다. 특히 이런 악천후에서는 더욱 그랬다. 최대한 견디기로 작정한 선장이 입을 열었다.

"일단 최대한 천천히 운항해. 엔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박만수는 다시 기관실로 내려갔다. 하지만 강도식은 알고 있었다. 이런 거친 바다에서 엔진 출력을 줄이면 배가 파도에 제대로 맞서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선실에서는 승객들의 불안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배가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악...! 이번엔 정말 뒤집어질 줄 알았어! 큰일났네..."

인터넷 방송팀의 어느 한 명이 소리쳤다. 방금 전 거대한 파도가 배를 덮치면서 배가 45도 가까이 기울었던 것이었다.

"엄마... 무서워..."

스무 살 청년이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평소 어른스럽게 행동하려 했지만, 이런 극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어린애처럼 변할 수밖에 없었다. 이도현은 자신의 가족들을 떠올렸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딸... 만약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분명히 괜찮을 거야...'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점점 불안이 커져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점점 더 험해지고 있었고, 배의 흔들림도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여러분, 혹시 휴대폰 전화 되는 분 있나요?"

누군가 물었다.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확인해봤지만 여전히 전파가 잡히지 않았다.

"여기는 바다 한가운데라 기지국이 없어요. 육지에 가까워져야 전화가 될 겁니다."

70대 노인이 설명했다. 하지만 언제 육지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오후 430, 백두호는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 가장 큰 파도와 마주했다. 높이가 7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물벽이 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단단히 붙잡으세요...!!"

강도식 선장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하지만 그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파도가 백두호를 덮쳤다.

"쏴...!! 파지직...!!"

엄청난 충격과 함께 배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바닷물이 갑판을 완전히 덮었고, 선실 창문으로도 물이 새어 들어왔다.

"으아악! 사람 살려...!!!"

모든 승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도현도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몸이 여기저기 부딪히며 아팠지만, 그보다는 공포가 더 컸다. 몇 번 더 기우뚱거린 배는 잠시 멈췄다.

"괜찮으신가요?"

70대 노인이 일어나며 다른 사람들을 도왔다. 나이가 많았지만 오히려 가장 침착했다.

"배가... 배가 기울어지고 있어...!"

인터넷 방송팀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정말로 백두호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파도의 충격으로 배의 균형이 깨진 것 같았다. 몇 분 후에야 백두호는 원래 상태로 돌아왔지만,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선장님! 큰일입니다!"

박만수가 다급하게 조타실로 뛰어올라왔다. 그의 옷은 기름과 바닷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기관실에 물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방금 전 큰 파도 때문에 어딘가에서 물이 새는 것 같아요!"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기관실에 물이 차면 엔진이 멈출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백두호는 완전히 무력화될 것이었다.

"얼마나 들어왔어?"

"지금은 발목 정도인데, 계속 차오르고 있어요!"

강도식은 급히 결정을 내려야 했다. 물을 퍼내려면 엔진을 정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 거친 바다에서 배가 파도에 휩쓸려 더 위험해질 것이었다.

"일단 배수펌프부터 가동해!"

"이미 가동했는데도 계속 차오르고 있어요!"

"그럼... 그럼 일단 버텨봐. 내가 내려가서 확인해볼게."

강도식이 조타실을 박만수에게 맡기고 기관실로 내려갔다. 정말로 바닥에 바닷물이 차올라 있었다. 엔진 소리도 평소보다 이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엔진이 멈추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오후 5, 강도식 선장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승객들에게 현재 상황을 알려야 했다.

"승객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확성기를 통한 선장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무거웠다.

"현재 기상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 항구 도착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배에 약간의 기계적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선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이 선장의 말에 집중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곧 해결될 문제이고, 안전하게 항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장의 말투에서 승객들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선장님, 정확히 무슨 문제인가요?"

어느 승객이 물었다.

"엔진 냉각 계통에 소량의 해수가 유입되었습니다. 지금 수리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리가 아니라 버티는 것에 가까웠다. 이런 거친 바다에서 제대로 된 수리는 불가능했다. 이도현은 선장의 말을 들으며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엔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곧 배가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정말로... 죽을 수도 있는 건가?'

지금까지는 단순히 무서운 경험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로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아내가 해준 말...

"조심해서 다녀와. 사랑해."

그때는 평범한 인사였는데, 이제는 마지막 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팠다. 다른 승객들도 비슷한 심정인 것 같았다. 모두들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엄마, 우리 죽는 거야?"

스무 살 청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야, 괜찮을 거야. 선장님이 안전하게 데려다주실 거야."

중년 여성이 아들을 달랬지만, 그녀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오후 530,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일어났다.

"덜덜덜... !"

갑자기 엔진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배 전체가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엔진의 진동이 사라지자 파도 소리만 더욱 크게 들렸다.

"선장님! 엔진이 멈췄습니다!"

박만수의 절망적인 외침이 들렸다.

"재시동 시도해봐!"

"안 됩니다! 완전히 멈췄어요!"

강도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제 백두호는 완전히 무력한 상태가 되었다. 거센 파도에 휩쓸려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승객들도 상황이 심각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엔진 소리가 없어지자 배가 파도에 밀려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인터넷 방송팀이 다급하게 물었다. 강도식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엔진이 없으면 이 거친 바다에서 방향을 조종할 수 없었다. 엔진이 멈추자 백두호는 완전히 파도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배는 이리저리 밀려다니며 마치 나뭇잎처럼 흔들렸다.

"아이고... 더 심하게 흔들려..."

멀미에 시달리던 승객들의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다. 엔진이 있을 때는 그나마 배가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파도에 맡겨진 상태였다.

"선장님, 구조 요청은 못 하나요?"

70대 노인이 물었다.

"무선 통신이 안 되고 있습니다. 휴대폰도 전파가 안 잡히고..."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었다. 외부에서는 백두호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도현은 창밖을 내다봤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곧 어둠이 찾아올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밤이 되면 더욱 위험해질 것이었다.

"모든 승객은 구명조끼를 착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강도식 선장의 안내가 나오자 선실이 술렁였다. 구명조끼를 착용한다는 것은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정말로 배가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청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안전 조치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선장의 말에도 확신이 없었다. 실제로 엔진이 멈춘 상태에서 이런 거친 바다에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도현은 떨리는 손으로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오렌지색 구명조끼를 입으니 상황이 더욱 실감났다.

'정말로 죽을 수도 있구나...'

허리춤의 빈 수통 2개도 확인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몸에서 떼지 않고 있었다. 오후 6, 해가 완전히 기울기 시작했다. 폭풍구름 때문에 하늘이 더욱 어두워 보였다. 곧 완전한 어둠이 찾아올 것이었다. 밤이 되면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더욱 위험해질 것이었다. 또한 구조작업도 밤에는 거의 불가능했다.

"선장님, 혹시 비상용 발전기는 있나요?"

인터넷 방송팀이 물었다.

"있긴 한데... 지금 상황에서 얼마나 쓸 수 있을지..."

전력도 제한적이었다. 최대한 아껴 써야 했다. 백두호는 계속해서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언제 육지에 도착할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승객들은 모두 불안에 떨고 있었다. 50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과 함께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백두호의 운명은 이제 바다의 손에 맡겨진 상태였다. 파도 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리며, 승갹들과 선원을 태운 백두호는 폭풍우 속에서 계속 표류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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