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호 침수 시작...>
오후 3시 30분, 서해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아침에 보았던 평온한 푸른 바다는 간데없고, 이제는 분노한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파도는 5미터를 넘나들며 백두호를 장난감처럼 흔들어댔다.
이도현은 선실 창가에 몸을 맡긴 채 밖을 내다봤다. 창문에 부딪히는 바닷물 때문에 시야가 흐릿했지만, 그래도 바다의 무서운 위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파도가 마치 산처럼 솟아올랐다가 백두호를 향해 무너져 내렸다.
"으으으... 토할 것 같아..."
인터넷 방송팀 중 한 명이 비닐봉지를 붙잡고 신음했다. 심한 멀미에 시달리고 있었다. 처음엔 용감하게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려 했지만, 이제는 그럴 여유도 없었다.
"진정하세요. 곧 괜찮아질 겁니다."
70대 노인이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그의 얼굴도 창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40년 바다 경험에도 이런 급작스러운 폭풍은 처음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회사의 사원 두 명은 서로 붙잡고 앉아 있었다. 평소 자신만만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겁에 질린 표정뿐이었다.
“이거... 정말 위험한 거 맞죠?”
모녀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스무 살 아들은 어머니를 꼭 껴안으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도현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솔직히 그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풀려고 떠난 평범한 낚시 여행이 이렇게 위험한 상황으로 변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럴땐 뭐라고 해야 하나...’
조타실에서 강도식 선장은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30년 바다 경험으로도 이런 급작스러운 기상변화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기상청 예보에서는 이런 폭풍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기관장, 엔진 상태는 어때?”
“지금까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런 날씨가 계속되면...”
박만수 목소리에는 불안이 섞여 있었다. 백두호는 20년 넘은 낡은 배였다. 평상시에도 가끔 고장이 났었는데, 이런 극한 상황에서는 언떤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강도식은 해도를 다시 확인했다.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까지는 3시간 정도 걸렸다. 하지만 이런 악천후 상황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었다.
“선장님, 무전기는 여전히 안 됩니까?”
“아직 잡음만 들려요. 이런 폭풍에서는 전파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무전기에서는 여전히 지지직거리는 잡음만 들려왔다.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단절된 상황이었다. 해경이나 다른 선박들도 이런 폭풍우 속에서는 구조작업을 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젠장... 이런 때 왜...”
강도식은 속으로 후회했다. 아침에 날씨가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출항을 포기했어야 했는데, 승객들을 실망하게 하기 싫어서 강행한 것이 실수였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오후 4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백두호의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덜덜덜... 끼익...”
“선장님! 엔진이 이상해요!”
박만수가 급히 조타실로 올라왔다. 그의 얼굴은 기름때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뭐가 문제야?”
“냉각수 계통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아마도 큰 파도 때문에 바닷물이 들어간 것 같아요.”
치명적인 문제였다. 엔진이 과열되면 완전히 멈출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백두호는 완전히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게 될 것이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짜내어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마음먹은 선장이 기관장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어?”
“지금 상태로는... 한 시간 정도? 그것도 운이 좋으면요.”
강도식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 시간으로는 항구에 도착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이런 악천후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일단 최대한 천천히 운항해...! 엔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박만수는 다시 기관실로 내려갔다. 하지만 강도식은 알고 있었다. 이런 거친 바다에서 엔진 출력을 줄이면 배가 파도에 제대로 맞서지 못할 것이라는 건 초짜들도 아는 사실이었다. 선실에서는 승객들의 불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배가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으악! 이번엔 정말 뒤집어질 줄 알았어...!”
인터넷 방송팀의 한 명이 소리쳤다. 조금 전 거대한 파도가 배를 덮치면서 배가 45도 가까이 기울었던 것이었다.
“엄마... 무서워...”
스무 살 청년이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평소 어른스럽게 행동하려 했지만, 이런 극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어린애처럼 변할 수밖에 없었다. 이도현은 자신의 가족들을 떠올렸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딸... 만약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분명히 괜찮을 거야.’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점점 불안이 커지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시간이 갈수록 더 험해지고 있었고, 배의 흔들림도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여러분, 혹시 핸드폰 전화 되는 분 있나요?”
대기업 사원 중에 한 명이 물었다. 모든 사람이 핸드폰을 확인해봤지만, 여전히 전파가 잡히지 않았다.
“여기는 바다 한가운데라 기지국이 없어요. 육지에 가까워져야 전화가 될 겁니다.”
70대 노인이 설명했다. 하지만 언제 육지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오후 4시 30분, 백두호는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 가장 큰 파도와 마주했다. 높이가 7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파고가 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단단히 붙잡으세요...!”
강도식 선장은 순간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파도가 백두호를 덮쳤다.
“쏴아...! 쾅...!!”
엄청난 충격과 함께 배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바닷물이 갑판을 완전히 덮었고, 선실 창문으로도 물이 새어 들어왔다.
“아이고! 으아악...!”
모든 승객이 비명을 질렀다. 이도현도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몸이 여기저기 부딪히며 아팠지만, 그보다는 공포가 더 컸다.
“괜찮으신가요?”
70대 노인이 일어나며 다른 사람들을 도왔다. 나이가 많았지만, 그는 오히려 가장 침착했다.
“배가... 배가 기울어지고 있어!”
인터넷 방송팀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정말로 백두호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파도의 충격으로 배의 균형이 깨진 것 같았다. 기우뚱거리던 선체는 몇 분 후에야 원래 상태로 돌아왔지만, 모든 사람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
“선장님! 큰일입니다!”
박만수가 다급하게 조타실로 뛰어들었다. 멍키스패너를 손에 든 그는 옷이 기름과 바닷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기관실에 물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큰 파도 때문에 어딘가에서 물이 새는 것 같아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기관실에 물이 차면 엔진이 멈출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백두호는 완전히 무력화될 것이었다.
“얼마나 들어왔어?”
“지금은 발목 정도인데, 계속 차오르고 있어요!”
강도식은 급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물을 퍼내려면 엔진을 정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거친 바다에서 배가 파도에 휩쓸려서 더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일단 배수펌프부터 가동해!”
“이미 가동했는데도 계속 차오르고 있어요!”
“그럼, 일단 버텨봐. 내가 내려가서 확인해볼게.”
선장, 강도식이 조타실을 박만수에게 맡기고 기관실로 내려갔다. 정말로 바닥에 바닷물이 차올라 있었다. 엔진 소리도 평소보다 이상했다.
‘엔진이 멈추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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